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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 Original][전직 패션 에디터가 본 일본의 라이프 스타일] #7 밀레니얼이 바꾸는 일본의 료칸 문화 - 교토의 전통 료칸 ‘수미야 키호안' VS 고베의 료칸식 호텔 ‘렌’

이수진
2020-10-23
조회수 167

서울을 떠나 오사카에서 산지도 꽤나 긴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익숙해서 서울과 크게 다른 점을 느끼기 어렵다. 굳이 꼽자면 차량 통행방향 정도일까? 하지만, 휴일에 차를 타고 근교로 짧은 여행이라도 떠나게 되면 ‘아! 정말 내가 다른나라에 살고 있긴 하군!’이라고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장소가 하나 있다. 바로 온센료칸(温泉旅館)이다.

일본에서 살기 전에, 료칸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막상 일본으로 여행을 오거나 하면 짧은 일정으로 도심의 호텔에서 지내며 음식과 쇼핑에 여행시간의 대부분을 소비하곤 했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료칸을 찾았던 때의 강렬한 인상이 아직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뇌리에 남아있다.


처음 방문했던 료칸. 쿄토의 수미야 키호안 정문. (출처=Sumiya.ne.jp)


서울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후, 첫 여행 때였다. 교토에 위치한 수미야 키호안(すみや 亀峰菴)이라는 곳이었는데, 교토 시내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카메오카(亀岡)에 위치해 있었다. 주변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분위기의 이곳은 입구의 느낌으로 보아 무척 오래된 곳 같았으나, 건물과 내부 인테리어가 깔끔한 것은 물론이고 소품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당장 <보그>나 <바자>의 패션 화보를 찍어도 무색하지 않을만큼 자연스럽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따뜻하면서도 점잖은 톤의 침구와 커튼색의 오묘한 조화, 얇은 흰색 천을 짙은 갈색의 목재 위에 느슨하게 걸쳐져 장식한 노천온천 같은 곳은 당장이라도 영화감독이 ‘컷’을 외치며 튀어나올 것 같은 감각적인 곳이었다.

첫번째로 방문한 이 료칸의 분위기에 나는 송두리째 마음을 빼앗겼고, 입구에서 우리를 반겨준 료칸의 여주인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역시나 그곳은 교토의 카메오카 온천가에서도 3대째 경영을 이어온 유서 깊은 곳이었다(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방문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료칸의 내부 인테리어. 오랜된 곳이지만 놓여진 소품이 세련되었다. (출처=Sumiya.ne.jp)


방의 내부 인테리어. 앉아만 있어도 힐링이 되는 자연의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져 있다. (출처=Sumiya.ne.jp)


이 곳의 가장 큰 매력은 ‘카시키리 로텐부로(숙박료 이외에 돈을 더 내고 시간제로 빌리는 개인 노천온천)’이다. 방에 비치된 유카타를 걸치고, 게타를 신고 또각또각 오솔길을 따라 몇 분 정도 오르막을 걸으면 모습을 드러내는 노천온천은 정말 날것 그대로의 숲 속에 위치해 있는데, 아담한 노천온천과 작은 목조의 탈의실이 있을 뿐 주변은 온통 숲과 나무뿐이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이 노천온천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날개옷을 입은 선녀가 나타날 것만 같다. 료칸 소유의 땅이라 벌거벗고 목욕을 해도 아무도 볼 사람은 없을 테지만, 지붕도 가림막도 별로 없는 이곳에서 자연의 노천탕에 들어가 있자면 인간 태초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아랫배가 찌릿찌릿해지는 묘한 자유마저 느낄 수 있다.


개별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가시키리 노천온천. (출처=Sumiya.ne.jp)


전통료칸에는 그들만의 특별한 서비스가 있다. 먼저, 목욕을 끝내고 돌아온 손님들에게 방에서 저녁식사로 제공하는 ‘가이세키 요리’가 그것이다. 다다미 위의 좌식 테이블에서 료칸 여주인의 정중한 서비스를 받으며 즐기는 전통 일본식 식사가 끝나면, 보통은 소화도 시킬 겸 아름답게 꾸며진 일본식 정원을 산책한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면, 깨끗한 흰색 커버가 씌워진 오리털 이불이 정갈하게 깔려 있다. 료칸의 손님들은 이런 ‘손이가는' 세심한 서비스를 받으며 편안하게 잠자리에 든다. 조용한 산중에서 잘 씻고, 잘 먹고, 잘 자게 되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힐링이 될 테지만, 료칸은 거기에 ‘소중하게 대접받았다는 만족감’을 프리미엄으로 얹어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비싼 돈을 지불하고, 료칸을 찾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몸과 마음에 영양분을 듬뿍 받고, 다시 씩씩하게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계절별로 다른 메뉴가 제공되는 수미야 키호안의 저녁식사. (출처=Sumiya.ne.jp)


계절별로 제공되는 사이드 메뉴 중 하나. (사진출처=Sumiya.ne.jp)


저녁이 되면 료칸은 더 조용해져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출처=Sumiya.ne.jp)


물론, 료칸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정말 오래되고 정비가 제대로 안된 곳을 저렴한 가격에 속아 가게 되면, 너무 낡은 시설에 기분이 좋아지키는커녕 우울해져 돌아오게 되는 곳도 있다. 반면, 시설은 아주 좋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짧은 여행을 하고 돌아와 본전 생각이 나게 되는 곳도 있다. 그래서 료칸을 여러 번 경험하고 나면 료칸을 선택할 때에 여러가지로 알아보고 고민한 후 결정을 하게 된다. 다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일까? 요즘엔 적당한 가격에 료칸의 조용함과 호텔의 편리함을 두루 갖춘 새로운 료칸식 호텔이 생겨나고 있다.


고베의 바닷가에 위치하여 모든 방에서 바닷가 전망을 즐길 수 있는 미나토 온센호텔 렌. (출처=ren-onsen.jp)


저녁시간에 호텔에서 나와 산책을 하면서 찍어 본 렌의 전경. (출처=직접촬영)


고베의 하버랜드 근처에 위치한 온천 & 스파 호텔인 ‘고베 미나토 온센 렌(神戸みなと温泉 連)’은 고베 시내의 랜드마크인 고베 포트 타워와 메리켄 파크 옆에 자리하고 있어, 산속에 위치한 료칸보다 지리적 접근성이 매우 좋다. 또한, 모던하게 잘 정비된 바닷가에 위치하여 늦은 밤이라도 호텔에서 나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주변을 산책할 수도 있다. 나는 가족들과 가끔 이곳을 찾는데, 전통 료칸에 가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거나 가까운 곳에서 편리함도 즐기면서 살짝 료칸을 맛보고 싶을 때 주로 이용한다.


렌에서는 고개만 돌리면 이렇게 고베의 가장 유명한 야경을 볼 수 있다. (출처=직접촬영)


‘렌’의 외부는 여느 호텔과 비슷한 모던한 모습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일본 료칸 특유의 스타일을 가미한 인테리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호텔방의 문을 열면 짧은 복도가 먼저 보이고, 그곳에 화장실, 옷장, 목욕탕 등이 있다. 더 들어가 미닫이식 중문을 열면 조금 넓은 공간으로, 침대와 다다미가 공존한다. 세련된 현대식 다다미 위에는 낮은 테이블과 좌식의자, 그리고 바닷가 전망의 테라스도 있다. 방에 비치된 세련된 디자인의 유카타며 대욕탕에 노천온천까지 료칸이 가지고 있을 법한 요소는 모두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저녁엔 료칸처럼 각각의 방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3층에 위치한 뷔페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된다. 아마도 이런 부분에서 비용을 줄여 여러가지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듯하다.


침대와 료칸의 다다미가 공존하는 렌의 방. 세 명이 묵게되면 저녁에 다다미 위에이불을 펴준다. (출처=사진출처=Ikyu.com)


각 방에서 볼 수 있는 고베 바다의 전경. (출처=직접촬영)


온천 수영장으로 향하는 복도엔 약간의 료칸스러운 조명과 돌로 장식되어 있다. (출처=직접촬영)


현대적인 인테리어에 료칸스타일의 터치를 더했다. (출처=직접촬영)


이 호텔의 백미는 수영복을 입고 즐기는 야외 온천 풀이다. 가족, 연인이 함께 바다가 보이는 따듯한 온천풀에서 사시사철 수영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온천 풀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 층인 10층으로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면서 온천욕을 할 수 있다. 다른 호텔과 비슷한 가격으로 다양한 시설을 갖추면서도 료칸의 매력을 놓치지 않는 치밀함이 이 호텔의 차별화 전략이다. 대가족이 다 함께 온천풀에서 수영을 하고, 호텔 뷔페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아이들까지 각 세대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종류의 식사를 한 후, 어른들을 위한 조용한 노천온천까지 가능한 이곳을 아마도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될 것이다. 아이스크림뿐만 아니라, 료칸도 입맛에 따라 다양하게 고를 수 있게 된 시대가 온 것이다.


고베의 바다가 보이는 렌의 깔끔한 온천 수영장. (출처=prtimes.jp)


쌀쌀한 날씨일수록 기분이 더 좋은 렌의 온천 수영장. (출처=직접촬영)


10층에 위치한 숙박자 전용 노천 온천 (출처=jalan.net)


숙박자 이외에도 온천을 이용할 수 있다. 일일 사용자를 위한 노천 온천. (출처=ren-onsen.jp)


일본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장기간의 경제침체나 임금의 저하 등으로 인해 부모세대보다 경제적으로 여의치 못하다. 또,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 작은 것 하나의 구매에도 상품평이나 리뷰를 찾아보고 비교하여 신중히 결정한다. 그들의 소비는 철저히 절약과 편리함을 추구하는데 있다. 무엇보다도 본인에게 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다소 가격이 비싸더라도 구입을 하는 ‘가치 중심’의 소비 패턴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시니어 세대가 유명 레스토랑을 선호하는 반면, 밀레니얼 세대는 가족이 함께하는 집에서 먹는 밥을 선호한다고 한다. 예전 세대가 ‘브랜드 지향’이라면, 밀레니얼 세대는 ‘실용 지향’인 것이다. 이런 그들에게 전통 료칸은 어쩌면 필수적이지 않은 요소를 위해서 불필요한 지출을 해야 하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들은 더이상 호텔보다 더 비싼 료칸을 찾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이들에게 맞는 새로운 스타일의 호텔이 바로 ‘렌’같은 료칸식 호텔이다. 전통 료칸보다는 현대적인 편리한 시설을 갖추고, 접근성까지 좋은 료칸식 호텔은 이 시대의 또다른 형태의 숙소로 자리잡아 가게 될 것임에 분명하다.


[이수진]

한국에서 열심히 일만 하다가 약 16년전, 결혼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마리끌레르><하퍼스바자><보그걸> 등의 잡지에서 십년 조금 넘게 패션 에디터를 하며, 여러 나라를 다니고 느낄 기회가 많았지요.  현재는 일본 오사카의 <국제교류센터> 등에서 통역, 번역, 한국어 강사, 그리고 <Goodday Minoh>라는 일본의 FM라디오에서 한국어 DJ도 맡아 활동 중입니다. 일본은 정말 신기하게도 한국과 닮아 있기도 하고, 정말 다른 점도 동시에 가진 나라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아는 듯 모르는 일본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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