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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 Original][전직 패션 에디터가 본 일본의 라이프 스타일] #5 지금 교토에서 가장 힙한 공간, 신풍관 & 에이스 호텔 교토

이수진
2020-08-21
조회수 2889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경솔한 표현일까? "올해 여름 휴가는 망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여름의 이 난감한 상황을. 나는 반년도 더 전에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했고, 오랜만에 즐거운 휴가를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는 커녕 집 근처 쇼핑몰도 조심해가며 잠깐씩 외출을 하는 것이 전부인 이 여름. 확실하게 이번 ‘여름 휴가’는 없었던 것이 되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 언질을 주었다. 교토의 에이스 호텔이 긴급사태선언이 끝난 6월에 오픈한다고. 에이스 호텔? 처음 들어보는데? 나에게 언질을 준 ‘누군가’는 오사카에 지인 중 몇 안되는, 패션과 문화에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였기에 귀가 솔깃했다.


에이스 호텔 객실 내부. 출처=acehotel.com


고백하건데 나는 내가 모르는 문화적, 감각적인 정보를 듣는 순간 아직 다 사그러들지 않은 기자의 피가 용솟음 치곤 한다. 그런데, 한참 지루하던 차에 내가 모르는 또 하나의 정보가 귀에 들어왔고, 나는 바로 인터넷을 찾아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에이스 호텔은 뉴욕의 맨해튼 중간 지점 쯤에 위치한 힙한 호텔이다. 매일 밤 로비에서 신나는 라이브 음악이 연주되며, 호텔의 갤러리에서 팝 아트 소재의 전시가 열린다. 객실에는 빈티지 가구들과 턴테이블, 기타 등이 놓여있어 영화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호텔 내에는 미쉐린 등급의 다이닝 바가 있으며, 밤 늦게까지 손님들은 호텔의 곳곳을 즐길 수 있다. 한마디로 가족 호텔보다는 젊은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즐길만한 호텔인 것이다. 이 핫한 호텔이 아시아 최초로, 하필이면 일본 전통의 도시, 교토에 문을 열게 된 것이다. 구미가 당기던 차에 지인은 한마디 덧붙인다. "그곳에 가면 ‘신풍관’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거예요"라고. 신풍관? 그건 또 뭐지?


빈티지 뉴욕 감성에 교토의 터치가 들어있다. 턴테이블과 정갈하게 놓여진 LP. 출처=acehotel.com


하지만, 호텔을 예약하고 호텔 정보에 집중하다 보니 ‘신풍관’은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근처에 있는 쇼핑몰 정도 되려나? 호텔도 즐기고 쇼핑도 할 수 있겠군."

하지만, 예약한 날이 되어 호텔 입구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난 머리를 한대 ‘띵!’하고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건물이 생각보다 너무나 낡아 보였기 때문이다. 겉에서 본 호텔은 그냥 옛날 벽돌 건물인데, 군데 군데 난 길고 큰 창은 19세기 유럽 스타일의 둥근 마감이었고,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 브라운 컬러의 건물엔 한자로 무심하게 ‘신풍관(新風館)’이라고 씌여 있었다. 호텔쪽 외벽은 큰 나무판들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그건 마치 옛날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거대한 군함을 상상케 했다. 솔직히 ‘힙’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신풍관과 에이스 호텔의 외관. 출처=saitoshika-west.com


"흠... 완전 옛날 건물에 교토를 조금 입혔군!"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는데, 또 한번 머리 속에서 ‘띵!’하고 소리가 울렸다. 분명히 외부는 크게 볼 것 없는 옛날 건물에 불과 했었는데, 안은 ‘힙함’ 그 자체로 무장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안쪽 갤러리 공간에는 팝 아트와 일본 미술의 경계에 있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고, 스타일리시한 젊은 친구들이 바로 그 ‘스텀프타운(Stumptown) 커피’를 들고 로비 라운지에 시크하게 앉아 있었다. 로비에선 당장이라도 몸을 움직이고 싶은 ‘라운지 음악’이 쿵쿵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에이스 호텔의 로비. 출처=acehotel.com

벽면에 창식된 아트 작품. 직접 촬영

포틀랜드에서 시작된 스텀프 타운 커피. 블루보틀과 함께 유명한 이 커피를 호텔 로비에서 만날 수 있다. 출처=acehotel.com


로비를 지나 안쪽 중정 으로 나오니, 이번엔 또 다른 자아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곧 새가 날아와 지저귈 듯, 나무가 정갈하게 심어진 모던한 일본식 정원에 트렌디한 감각을 더한 쇼핑과 레스토랑을 위한 공간이 다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안쪽으로 오픈 된 공간 사이사이에는 지금 한창 핫한 프랑스 브랜드인 ‘메종 키츠네’와 ‘메종 키츠네 카페’, 그리고 교토의 터치가 한껏 들어간 디자인만을 모아 놓은 ‘빔스 재팬’, 그리고 술빙수를 파는 디저트 바인 ‘타스키’ 등이 입점해 있었다. 하나같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 뿐이었다.


에이스 호텔과 신풍관 사이의 중정. 직접 촬영

메종키츠네, 메종키츠네 카페, 빔스, 타스키 등이 입점해 있다. 직접 촬영


두근대는 심장을 뒤로하고 평정을 가장한 후, 체크인 한 호텔은 생각했던 대로 쿨하고 안락했으며, 직원들은 친절했다. 난 좀 까다로운 사람이라, 친절에도 정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기계적이고 마음이 담기지 않은 과한 친절은 좀 불편하다. 일본엔 그런 ‘기계적인' 친절로 손님을 대하는 호텔들도 많은데, 나에게 호텔의 좋고 싫음은 극단적으로 그 친절의 포인트에 달려있다. 에이스 호텔의 직원들은 아주 적당한 선의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 마치, 클럽 메드의 'GO'를 연상시키는, 친구의 배려와 같은 과하지 않은 기분좋은 접객 서비스였다. 외국인 직원들이 많아서 인지 그렇게 크지 않은 규모의 호텔이어서 가능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비스의 질이 태생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에이스 호텔 객실 내부. 직접 촬영


하지만, 오늘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게 된 건 호텔이 좋았기 때문은 아니다. 호텔의 소문을 듣고 우연히 방문하게 된 이 ‘신풍관'의 건물이 이상하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1926년 교토 전화국으로 처음 만들어진 이 건물은 2001년 종합 상업 시설로 바뀌게 되기까지 전화 교환국 사무실이었다. 이 오래된 건물의 뼈대와 외모와 규격을 그대로 살려둔 채로 오픈을 한것이 ‘구 신풍관’이며, 2020년 6월, 에이스 호텔과 함께 새로운 신풍관이 오픈을 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설계를 맡게 된 사람이 바로, 일본에서 너무나 유명한 건축가인 쿠마 켄고(隈研吾)다.


일본의 건축가 쿠마 켄고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에이스 호텔과 신풍관


난 건축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멋진 건축물을 보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게 된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책도 읽게 되었고, 그가 건축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오사카 출신의 괴짜라는 것도 알게되면서, 더욱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쿠마 켄고라는 이 건축가도 그 동안 관심있게 방문했던 여러 유명 건축물을 지었던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1920년대에 공적인 건물로 지어진 이 신풍관은 한 번은 영국의 건축가 리차드 로져스에(Richard Rogers)에 의해, 두 번째는 일본의 건축가 쿠마 켄고에 의해 크게 구조물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원래 건축물은 대단히 창의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유럽의 많은 건축물들처럼 대부분을 살리고, 최소한을 건드려서 옛날의 멋과 현대의 멋, 그리고 교토라는 전통 도시의 멋을 함께 녹여냈다. 또, 새로운 건축물이 반드시 미래적, 현대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없이 ‘강한 자연주의'를 담았다.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주제가 아주 딱 맞는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동서양의 조화가 완벽하다는 평을 듣는 신풍관과 에이스 호텔. 직접 촬영


나는 지금 오사카에 주택을 짓고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집을 짓는 일 년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건축가와 만나 집에 대해 하나하나 상의하면서 집을 완성했고, 그 기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집을 지으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건축물은 곧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눈에 멋지게 비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는 사람에 맞는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이 신풍관에 빠진 건 바로 그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의 구조물을 최대한 지키며 완성된 새로운 신풍관의 외부. 출처=shinpukan.jp


신풍관이 위치한 교토는 일본에서 가장 전통적인 도시다. 이 도시에서 건축물을 지으려면 정말 규제가 많다. 층의 높이도 그렇고 건축 방법도, 색의 사용도 그렇다. 맥도날드의 간판도 그 특유의 빨강과 노랑의 조합이 허락되지 않아, 교토 시내의 맥도날드 간판은 브라운과 노란색을 사용할 정도이다. 까다로운 건축 조건도 물론이거니와, 교토에서 가장 큰 번화가 중 하나인 카라스마(烏丸)에 위치한 이 곳은 유동 인구도 많다. 그 속에서 호텔의 프라이빗함도 있어야 했을 것이다. 신풍관은 밖에서 볼 때는 전통적인 교토의 주변 건물들과도 잘 어울리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아메리칸 모던과 함께 풍성한 자연까지 느끼게 해주는 정말 매력적인 건축물이다. 거기에 100년이나 된 건물을 보존해 사용하려면 그만큼 기초도 탄탄해야 할 것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고 멋스럽게 늙어가는 사람과 같은 건축물, 이것이야말로 미래에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건축물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수진]

한국에서 열심히 일만 하다가 약 16년전, 결혼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마리끌레르><하퍼스바자><보그걸> 등의 잡지에서 십년 조금 넘게 패션 에디터를 하며, 여러 나라를 다니고 느낄 기회가 많았지요.  현재는 일본 오사카의 <국제교류센터> 등에서 통역, 번역, 한국어 강사, 그리고 <Goodday Minoh>라는 일본의 FM라디오에서 한국어 DJ도 맡아 활동 중입니다. 일본은 정말 신기하게도 한국과 닮아 있기도 하고, 정말 다른 점도 동시에 가진 나라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아는 듯 모르는 일본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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