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with SPI

맛있는 커피 한잔, 그레이그리스트밀

2019. 11. 10·
박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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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분석하는 건물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이요. 그래서 진짜 소비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요즘엔 카페를 열심히 다닙니다.

 

👉 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 모아보기

일 년 전, 그레이그리스트밀에 갔던 첫날이 기억났다.

두터운 문이 있는 카페. 그 문을 밀고 들어갔더니, 커피가 모두 팔렸다고 했다. 이상했다. 원두는 상하는 음식이 아닌데, 어떻게 다 팔릴 수 있는 걸까?

일주일 뒤 아버지께서 다시 가보자고 하셨다. “또 원두가 없다고 할 수도 있어요.”라며 퉁퉁거렸지만, 딱히 다른 대안이 없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원두가 남아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왜 지난번에 원두가 모두 팔렸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곳은 손님들이 한번 마실 만큼의 원두만 개별로 포장하고 있었다. 하루 팔 양을 소분하고, 진공포장을 했다. 그날 다 팔면 그것으로 종료.

유별나다고 생각하며 커피를 주문하는데, 주문 방식도 독특했다. 원두를 고르고, 추출법을 고르면 원두값과 추출값을 따로 받는다. 원두값은 3,500원, 브루잉은 1,000원. 총 4,500원을 지불했다. 12가지의 원두를 6가지의 방법으로 마실 수 있었다.

개별 포장된 원두를 가리키며 물었다. “굳이 왜 이렇게 번거로운 작업을 하나요? 밀폐 용기에 담아두고, 그때그때 스푼으로 떠서 갈아주시면 편할 텐데요.” 바리스타가 웃으며, 수줍게 대답했다.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커피를 드리고 싶어서요.” 유난스럽다는 내 표정에도 그는 싱긋 웃기만 하였다.

“아휴, 커피 한 잔. 그냥 마시면 되지.’라고 툴툴거리며 한 모금 마셨다. 반전이었다. 진공 포장된 원두는 산화되지 않아, 뒷맛이 정말 깔끔했다. 그들이 이야기한 신선하고 맛있는 한 잔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제서야 보였다. 이분들 정말 커피를 좋아하는구나. 수고와 귀찮음을 감수하더라도, 정성껏 맛있는 한 잔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커피 한 잔을 더 팔려고 애쓰는 곳이 아니었다. 그냥 맛있는 한 잔을 만들고자 애쓰는 곳이었다.

그렇게 이곳을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들며, 몰랐던 사실들을 깨닫게 되었다. 국가대표 바리스타 선발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선수 한 명이 아니라 그를 지원하기 위한 팀이 필요했다. 커피를 내리는 선수 외에도, 원두를 수급해오는 사람, 그것을 최적의 상태로 로스팅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심지어 컵을 닦아주는 사람까지도 필요했다. 안드레아플러스의 최상현 대표님과 방준배 바리스타는 함께 대회를 준비했던 팀이었다고. 방준배 바리스타가 국가대표가 되는 동안, 최상현 대표님은 그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2017년 방준배 바리스타가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난 이후, 그들이 함께 오픈한 카페가 이 그레이그리스트밀이었다.

그들이 대회를 준비했던 시절만큼, 지금 그레이그리스트밀에도 좋은 멤버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일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레이가 바리스타들의 맛집으로 자리 잡는 데에는 임하람, 서지훈 바리스타의 중추적인 역할이 큰 것 같았다. 한 명의 손님에게도 웃으며 진심을 다하고, 손님들의 피드에 매일매일 고맙다는 댓글을 다는 그들의 노력. 그 노력 덕분에 이곳을 따스하게 여기는 단골이 늘어나고 있었다. 어찌나 팬이 많은지. 이렇게 선물을 많이 받는 바리스타도 드물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아, 물론 귀여움을 담당하는 신건용 바리스타와 새로 들어온 민재씨와 세연씨도. 언제나 잘 벼려진 칼처럼, 반듯하고 프로답게.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내려주고 있었다.

“그런데요. 팀장님. 왜 이렇게 특이한 카페를 기획한거셔요?”라는 나의 질문에 방준배 바리스타는 이야기했다. “잘 보면, 대회 때 심사위원들께 커피를 대접하는 방식과 동일해요. 가장 맛있는 커피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손님 한 명의 주문마다 매 시합 때처럼 정성껏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커피 한 잔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며.

그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보며, 어느 날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스시장인 오노지로예요. 그의 말처럼 ‘꾸준하게 반복적인 일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장인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 장인의 길을 가고 싶고요.” 선수의 커피를 넘어, 장인 커피의 길을 가고자 하는 곳. 그레이그리스트밀이었다.

이들의 5년, 10년 뒤가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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