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with SPI

일본의 아침을 여는 카페, 모닝그(モーニング)

2020. 06. 17·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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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정말 신기하게도 한국과 닮아 있기도 하고, 정말 다른 점도 동시에 가진 나라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아는 듯 모르는 일본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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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브런치 체인 사라베스의 아침메뉴. 일본에도 다섯개의 점포가 들어와 있다. (사진 출처=Sarabethsrestaurants.jp)

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난 카페의 브런치를 사랑한다. 주말 아침 늦잠을 자고 느즈막히 일어나 대충 걸쳐입고 집 근처의 카페에서 먹는 아침 겸 점심. 막 구운 빵에 곁들여진 베이컨, 오믈렛, 샐러드에 향이 좋은 카페라떼가 내 앞에 놓여지면, 그 순간만큼 행복한 때가 또 있을까 싶다. 한국에서 일을 하던 시절, 주말 아침이면 나는 카페 브런치를 먹으며 늘 최고의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아마도 한국인이라면 나같은 사람이 많겠지만, 일을 할 때는 많은 것을 제치고 일에 집중하고, 그 이후의 시간은 최대한 게으르고 싶었다. 그 게으름의 정점이 나에게는 브런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브런치 카페. 도쿄에 위치한 한 테라스 카페다. (사진 출처=Mensdrip.com)

그 후 일본으로 와 ‘그리 바쁘지 않은’ 주부로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지만, 오히려 아침시간은 할 일이 많은 ‘과제의 시간’이었다. 일을 나가는 남편을 챙기는 것이 하루의 큰 일과 중 하나였던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식구가 하나 더 늘면서 아침시간은 나에게 평일이든 주말이든 영원히 게으를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바쁜 아침을 몇 년 보내고 아이는 자라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나에게도 드디어 아침 느즈막히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곳에서도 친한 일본 친구들과 브런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모닝그 카페의 전경. 깨끗하지만 조금 어두운 나무로 된 인테리어가 많다. (사진 출처=Kuoudokakura.jp)

그런데, 처음부터 생각과 많이 다른 상황이 연출되었다. 일단, 만나자는 약속시간이 꽤나 빨랐다. 아침 8시 30분. 와우! 이렇게나 일찍 만나는 이유가 뭘까? 게으른 브런치를 상상하던 나에겐 조금 불만스러운 이른시간이어지만, 어쨌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빨리 준비를 마쳐 친구들을 만나 카페로 향했다. 이윽고 도착한 그 곳에서는 아침부터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도 일본의 식당에서 늘 그렇듯이, 입구에 놓여진 대기자 리스트 위에 이름을 적었다. 몇 명인지, 실내에 앉을지, 테라스에 앉을지, 금연석인지 흡연석인지(그렇다! 일본의 카페에선 아직도 흡연이 가능하다!)도 적었다. 약 10분을 기다린 후 우리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집 근처에서 유명한 일본식 커피하우스 히로고히. 맛있는 커피와 함께 모닝그로 유명하다. (사진출처=matome.naver.jp)

그곳은 근처에서도 일본식 커피를 잘하는 곳으로 꽤나 유명하다는 곳이였다. 카페의 한 구석에 자리를 잡은 우리가 맞이한 메뉴는, 원하는 커피 하나와 원하는 빵 하나를 500엔에 먹을 수 있는 아침메뉴였다. 상상했던 샐러드와 베이컨, 계란 요리는 없었다. 좀 실망스러웠지만 브런치보다 저렴한 가격에 커피와 빵을 먹을 수 있었다. 카페의 인테리어는 일본의 전통 건축양식에서 따온 듯한 나무로 만든 정돈된 인테리어에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배경으로 흐르고 있었다. 놀라웠던 점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손님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나 할아버지들로, 아침 일찍부터 단정하게, 튀지 않는 컬러의 살짝 멋을 낸 차림으로 혼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저마다 손에는 잡지나 신문, 책을 들고 있었다. 가끔 부부로 보이는 노인 커플이 앉아 있기도 했지만, 꽤나 높은 비율로 ‘혼자 오신’ 분들이 많았다. 나와 친구들은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용히 빵과 커피를 먹으며 작은 소리로 수다를 떨었지만, 가끔씩 터지는 웃음소리에 옆자리의 시선이 느껴졌다.

자주 먹는 모닝그 메뉴. 이 정도면 4 인분 정도 된다. 샌드위치는 조금 가격이 비싸다. (직접 촬영)

이렇게 나의 첫 일본 브런치 카페 탐방기는 시시하게 끝이 났다. 기대했던 느긋함도 없었고, 친구들과의 수다도 주위 사람들 눈치가 보여 시원하게 떨지 못했다. 대신 클래식 음악과 함께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조용한 아침식사가 있었다. 화려한 메뉴는 없지만 저렴하고 간단한 아침메뉴와 정성들여 내린 그 카페만의 오리지널 블렌드의 커피가 있기에 사람들은 그곳에서 아침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 이른시간부터 줄을 서 있었으리라.

일반적인 모닝그 메뉴. 원코인 메뉴는 이런 스타일이다. (사진 출처=meieki.keizai.biz)

일본에는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스타일의 브런치 카페가 많지 않다. 그대신 ‘모닝그(モーニング)’를 하는 카페가 있다. ‘모닝그’는 영어 ‘Morning’의 일본어식 표현이다. 주로 시내에서도 주택이 밀집된 지역이나, 상가나 사무실이 많은 곳, 혹은 교외 주택가 등의 카페에서 주로 파는 아침메뉴를 말한다. 아침을 집에서 먹지 않는 습관을 가진,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지역엔 이런 모닝그 카페가 많다. 일본에서 외식을 하려면 대체로 꽤 돈이 드는 편이지만, 카페의 아침 식사 ‘모닝그’는 일반 카페 메뉴보다 파격적으로 싼 가격에 제공된다. 보통 카페에서 커피를 500엔에 판매한다면, 모닝그 메뉴를 시키면 그 500엔에 커피와 함께 간단한 토스트나 샌드위치까지 나온다. 카페에 따라서는 빵 종류만이 아니라, 삶은 계란, 혹은 작은 샐러드까지 포함해 500엔에 내놓기도 한다. 그래서 이 메뉴는 ‘모닝그 서비스 메뉴’, 혹은 ‘원코인 아침메뉴(일본에서는 우리돈 5000원 정도인 500엔 동전을 ‘원코인’라 부른다)’라고 불리기도 한다.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 좌석이 편하진 않지만 구석에 책이 꽂혀있어 책을 보며 커피를 마시기 좋다. (사진 출처=co-trip.jp)

커피는 물론이고, 카페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는 일본에서도 카페를 자주 찾는다. 그런데, 일본의 카페는 우리나라의 카페와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일본의 카페는 좌석 자체가 좁고, 옆 자리와 간격도 가까운 곳이 많다. 우리나라의 카페가 넓은 소파와 공간으로 이루어져 주위를 신경쓰지 않고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라면, 일본의 카페는 우리나라처럼 편하게 앉을 수 있는 공간은 적다. 친구와 수다를 떨려면, 차라리 커피를 사서 공원 벤치에 앉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옆자리의 말이 다 들려오는 거리인지라 편한 목소리로 대화하기는 좀 어렵다. 우리나라의 브런치 카페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라고 한다면, 일본의 모닝그 카페는 혼자, 아니면 둘이서 조용히 ‘아침식사를 하기 위한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우리나라의 브런치는 일상 중 특별한 시간이라고 한다면, 일본의 모닝그는 일상 그 자체다. 모닝그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 중엔 거의 같은 시간, 같은 곳으로 매일 오는 사람도 많다. 때문에 일본의 모닝그는 오전 8시정도에 시작해서 11시에 제공이 끝나고 그 이후에는 카페 영업이 시작된다. 한국의 브런치 카페의 경우 아마 오전 10시 정도에 시작해 점심시간 이후까지 계속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의 작은 카페. 이런 작은 곳은 교외 주택가 보다는 토지가 비싼 시내 중심에 더 많은편. (사진 출처=joboole.jp)

방문하는 연령층도 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아침시간에 브런치를 먹으러 가면 젊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모닝그 카페에는 나이드신 분들이 많다.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 역시 힙한 라운지 뮤직보다는 나이드신 분들도 즐기기 쉬운 클래식이나 조용한 올드 재즈가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옛날 호텔 커피숍 분위기를 상상하면 좋을 듯하다. 난 일본에서 가끔씩 카페 모닝그를 하면서 생각해 본다. 왜 일본엔 젊은 감각의 브런치 카페가 별로 없을까? 그리고 어르신 분들은 왜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시고 아침 일찍부터 차려입고 나오시는 걸까? 아침부터 커피를 밖에서 마시는 습관은 어디에서 부터 온 껄까? 정확한 답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 일본은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든 사람들의 경제적, 시간적인 여유가 더 많고, 혼자서 사는 분들이 많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택가와는 달리 사무실 밀집지역의 모닝그는 이런식이다. 하지만 사무실 밀집지역의 모닝그는 아무도 줄을 서지 않는다. 사람이 적은편. (직접 촬영)

일본의 경제 발전은 확실히 우리나라 보다 빨랐다. 그래서 지금의 일본 노년층은 경제 발전의 덕을 가장 크게 본 사람들로,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리고 경제적인 발전과 함께 문화적 여유도 누렸다. 일본에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일본의 젊은이들은 가난하고, 일본의 노인들은 부자다라는 이야기였다(일본의 노인들이 장농에 숨겨둔 현금이 일본 내 현금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들도 있다. 은행을 믿지못해 집에 현금을 보관하고, 조금씩 가지고 나가 쓴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래서일까? 일본의 아침 카페의 메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젊은이들이 아니라,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다. 그들은 높은 확률로 혼자살며,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며, 아침일찍 일어나고, 매일 커피를 마시러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때문에 매일 일찍 일어나 정갈하게 차려입고, 편안한 시간을 즐기러 ‘모닝그 카페’로 간다.

교토에 위치한 세계적 커피 체인점 블루 보틀 역시 공간이 넓진 않다. 이곳은 커피 중심의메뉴로 20~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다. (직접 촬영)

그렇다면 일본의 젊은이들은 카페에서 아침을 먹을까? 아니다. 통계자료를 본 건 아니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아침에 모닝그 카페에서 20대의 젊은 사람들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마 바쁜시간 아침식사는 간단하게 집에서 먹거나, 아니면 적당히 어디에선가 때우는 것 같다. 높은 확률로 그곳은 편의점일 것이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너무나 사랑하는 편의점의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모닝그 카페의 전형적인 메뉴. 일본의 물가에 이 정도가 500엔이면 사실 가성비가 꽤나괜찮은 편이다. (사진 출처=meieki.keizai.biz)

나는 요즘도 자주 카페 모닝그에 간다. 때로는 일본 친구들과 함께 가서 노인들 사이에 앉기도 하고, 때로는 조용히 혼자 책을 들고 앉기도 한다. 그리고 토스트와 커피를 주문한다. 한국처럼 여유있는 자리도 아니고, 풍요로운 메뉴도 없지만, 어쩌면 나도 그 나름대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닝그 카페의 매력에 슬며시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카페 모닝그에서는 일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있다. 그리고 매일 그곳에 오는 사람들의 아침을 열어주는 작은 활기가 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메뉴판을 보며, 클래식 음악으로 맞이하는 단돈 500엔의 사치가 있는 모닝그 카페에 왜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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