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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동의 맛

약수 순대국
2019. 12. 13·
박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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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이 궁금했습니다. 그들을 탐험하는 지혜의 눈(智眼)을 가지고자, 지안기행을 기록해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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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카페 리사르에 가겠다고 길을 나섰다. 귀는 꽁꽁 얼고, 손은 시리고. 약수 시장으로 올라가다 잠시 멈추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려면 우선 점심을 든든히 먹어야 할 텐데. 빨리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다 약수 순대국을 발견했다. 이 동네 토박이들이 좋아한다던 그 유명한 순댓국집. 다행히 줄이 없어 재빨리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다. 순댓국 9천원. 어? 여기 순댓국은 조금 비싸네. 우리 회사 앞은 7천원 정도 받았던 것 같은데. 회전율도 좋고 회사 앞보다 임대료도 저렴할 것 같은데, 왜 그럴까? 궁금함이 들면서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여기며 음식을 기다렸다.

“맛있게 드시이소.” 아주머니께서 뜨끈뜨끈한 순댓국을 자리에 놓아주셨다. 바쁜 가운데도 건네는 사투리 인사말이 정겨웠다. 한 숟갈을 떠먹었다. 내가 알던 기존의 순댓국과는 조금 다른 맛이었다.

따뜻한 순댓국 한 그릇. 국물이 맑다.

파와 청양고추를 듬뿍 넣어 그런가? 깔끔하고 맑은 국물은깊은 맛이 났다. 수저를 넣고 휘휘 저으니 아래에 있던 다대기가 풀렸다. 다시 떠먹으니 칼칼한 게 맛있다. 꽁꽁 언 속이 풀리는 느낌. 내게 익숙한 진득한 순댓국 맛은 아니었지만, 이 깔끔한 맛도 좋았다. 이건 서울 스타일인가?

부드럽게 잘 삶은 부속고기들을 그릇에 담고 계신다.

순댓국 안에는 다양한 부위의 돼지고기가 담뿍 들어가 있었다. 커다란 고기를 입에 넣으니 부드럽게 녹았다. 이 집은 고기를 참 잘 삶는구나.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전혀 없진 않았지만, 그 개성이 나쁘지 않았다. 다음에 씹은 것은 간이었다. 처음엔 퍽퍽하다고 생각했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감돌았다. 이것 참 맛있네. 한참을 먹다, 앞에 놓인 하얗고 통통한 새우젓을 넣었다. 새우젓이 신선해서 그런지 풍미가 살아났다.

이 국밥은 부산에서 먹던 돼지국밥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었다. 부산의 맛이 좀 더 찐하고 진득했다면. 약수 순댓국의 맛은 깔끔하고 깊었다. 언뜻 보면 서울깍쟁이 같은데. 나름 속이 깊은 서울의 맛이었다.

이곳이 약수동이 된 유래를 살펴보면, 버티고개에 몸에 좋은 약수터가 있었기 때문이라했다. 물이 좋아서, 이 집도 맑은 육수를 쓰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맑은 국물이 이곳 약수동과 꽤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이 가게가 40년이 넘게 동네에서 버티는 동안, 약수동은 참 많이 변했다. 기존의 노후화된 주택들이 철거되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주변이 바뀌고, 사람들이 바뀌어도 오랜 기간 동안 사랑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기본 재료가 좋고, 그 맛을 잘 살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그 값이 아깝지 않았다. 이렇게 다양한 부속고기들을 부드럽게 삶아내고. 그걸 맑고 깔끔한 국물과 함께 내니. 오래된 주택에 사시던 어르신들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그리고 주변의 직장인들도 모두 이곳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오는 길목에 보니, 사람들이 가게 앞에 줄을 길게 서있었다.

나가려고 일어나니, 문 밖에 줄이 길게 늘어졌다. 나는 다행히도 타이밍을 잘 잡은 것 같았다. 맑은 육수와 좋은 재료로 40년을 버틴 이곳이 지금처럼 앞으로도 오래 사랑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약수동에 걸맞은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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